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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끌같은 생들이 내 나아가고자 함을 방해하느냐!”

 “그러게. 나쉬와 누나가 가고 싶다고 하는데 막아서는 어른들이 나쁜거야.”

 “루카스, 이상한 것까지 받아줄 필요 없어.”

 “아하하, 뭐 어때? 재밌잖아, 마리아.”

 “흥.”

 “나쉬와 누나, 또 방에 들여보내지는 걸까. 맞는 말을 하는건데 늘 솔직해서 탈이지.”

 “재밌었는데 아쉽네. 예쁜이들, 나쉬와 위로해주러 가볼까?”

 “내버려 둬. 몇 번은 더 해야 저 요란한 말을 안 하게 되지. 루카스에게도, 너에게도.”

 ‘이 신의 아이님께서 직접 세상으로 나가 요그 소토스님의 말씀을 전파할 것이다!’ 라는 포부를 멋드러지게. 혹은 자신만이 만만하게 내어놓다 저지당하게 된 지 열 다섯 번 째. 늘 목청과 믿음만은 크고, 남들 보는 시선과 키만은 조막만한 한 명의 신의 아이는 그렇게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하얀 옷을 입은 어른들의 등쌀로 방으로 돌려보내졌다. ‘신께서는 신의 아이들이 아직 위험한 세상으로 나가길 바라지 않으시니 그 대답을 듣기 위한 기도 시간을 가져보세요.’ 라는 다소 온건한 방식으로 노이만 사제는 난처한 낯을 지우지 못한 채 설득했고, 오늘의 소란의 주역인 조그마한 신의 아이는 그 말에 완벽보다 조금 더 얹은 만큼 넘어갔다.

 “신께서 내 기도를 다른 신의 아이티끌들보다야 더 들으시지 않겠나! 내 의 음성을 직접 들어보고 사제에게도 말해드리겠네!”

 방문 밖에서 폭소하는 웃음소리가 하나 있었다. 이건 능글 티끌이겠지. 그 근처에서 한숨 쉬는 기척도 하나 있는 듯했는데, 이건 예쁜 티끌일 거였다. 누나드을, 하며 두런두런 말하며 멀어지는 목소리는 똑똑한 티끌이겠지. 저 하는 말 다 듣는 걸 알면서도 붉은 눈의 아이는 그것을 말실수라 여기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래, 나쉬와는 그런 아이였지. 별 말은 더 얹지 않고 사제는 아이의 방을 나가며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찾아갔고, 나쉬와는 곧장 침대에 폭닥하게 누웠다. 그리고 눈을 꼬옥 감고, 손을 깍지 껴 잡아 배 근처에 편안히 올려두었다. 나를 사랑하시는 신이시니, 내가 잠들면 분명 목소리를 들려주실테지! 반성의 기색이라곤 세 명분의 티끌만큼도 갖지 못한 신의 아이, 나쉬와가 잠이 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리 어린 이를 여기에서 보게 될 거라곤 그 언제도 떠올린 적이 없는데.”

 어쩐지 익숙한 말투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쉬와는 눈을 떴다. 허벅지에 닿을 만큼 기다란 곱슬거리는 백금발을 늘어트린 붉은 눈의 키 큰 여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치가 후 불면 날아갈 먼지만큼도 없는데다 머리가 그리 좋지도 않은 신의 아이였지만 거울을 안 보고 살아오진 않았기 때문에, 눈을 뜨고 마주한 이가 누구와 닮아있는지까지 떠올리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모친 되시나?”

 이 정도로 닮았으니 모친이 아닐 리가 없을 거였다. 교단의 사람들은 ‘나쉬와는 세 살 적부터 신실한 부모님께서 신의 아이인 아이를 교단에 맡기셨다.’ 라고 했고, 희미하게나마 가진 첫 기억속에 분명 햇빛처럼 반짝이는 머리가닥을 손에 쥐어본 자락이 남아있었다. 그러니, 모친이겠지. 부친이 아니라는 것은 적어도 자부할 수 있었다. ‘모친 되시나?’ 라는 말을 들은, 아마도 모친일 이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른 말을 꺼낸다.

 “나쉬와.”

 “내 이름은 적어도 내 모친이 지었나보구만!”

 그 대답이면 증명은 충분했다. 교단에서 본 적 없는 모친이나 부친이 지었을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는데 어찌 모친이 아니겠는지. 모친이라 여기기엔 젊은 얼굴이라는 건 조막만한 신의 아이에게 그리 중요한 부분이 되지 못했다. 어쨌거나, 나와 닮은 얼굴. 나와 닮은 신실함을 지녔을 그는 언제라도 한 번은 보고 싶었을 이였으니까.

 “내 모친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네! 날 교단으로 보내주어서 말일세.”

 “... 그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내가 미안할 일은 아니기도 하고.”

 “미안할 일이 무엇 있겠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조금 갑갑한 것이야 뭐, 곧 교단의 사제들이 내 기막힌 말에 모두 넘어갈테니 걱정없다네. 모친은 잘 지내고 계시는가? 교단에서 통 얼굴을 못 보았으니 말일세. 신실하다면 예배라도 드리며 한 두번쯤 찾아와도 되지 않는가.”

 사실은 궁금한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잔뜩이었다. 왜 나의 부모님은 그다지도 신실하다면서, 신의 아이인 날 교단에 바치기만 하고 날 한 번도 찾지 않는걸까.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는 부모님도 교단에서 먹고 살게 해달라고. 빈 방이 있지 않느냐며 복도에 누워 울음 터트린 기억도 어스름히 남아있었다. 어렵지만 일단 멋드러지고 있어보이는 교리, 믿어두면 편한 신앙. 맹목의 자락들에서 아이는 좀처럼 체념을 배우지 못했지만 단 하나, 모친과 부친을 곁에 둘 수 없다는 체념만은 자리해버렸고. 제 가진 것 숨길 줄 모르는 신의 아이는 아마도 제 어미일 것만 같은 닮은 얼굴의 어른에게 그리 투정을 했고, 어른은 아직도 누운 채로 저를 올려다보는 나쉬와의 머리맡에 앉아 머리를 툭툭 눌러주었다.

 “그래서 섭섭했는가. 심심했고.”

 “그야 섭섭했지! 지금 새겨 들었을테니 꼭 찾아오시게. 그래도 모친이 머리 쓰다듬어 주는 건 오랜만이라 좋구만! 예전에 쓰다듬어 주었던가? 주었겠지! 내 모친은 잘 믿는 티끌이었으니 그럴 거라 믿네. 아, 심심하진 않았다네. 교단에 나 아닌 신의 티끌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셋이나 더 있다네.”

 한, 둘, 셋 하며 손가락을 세 개 펼치곤 나쉬와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모친이니 잘 보이고 싶었다. 그 손가락을 바라보다 아마도 모친일 그는 그제서야 편안하게 웃는다. 그러곤 찬찬히,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준다.

 “마리아, 루카스, 섀넌.”

 “어, 뭔가. 오지도 않았는데 알고 있었나? 하긴 신의 아이이니 모를 리가 없겠구만! 내 모친의 신실함은 잘 알았네.”

 “잘 알지. 얼마나 소중한 이름들인데.”

 “나는 소중한가?”

 소중한, 이라는 말에 나쉬와가 아마도 자신의 어머니일 것 같은 사람을 뾰루퉁하게 바라보았다. 아직 자신에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면서 예쁜 티끌, 똑똑한 티끌, 능글 티끌들에겐 소중하다 하는 것만 같아서. 아마도 자신의 어미일 이는 그러고보면 자신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한 것이 적었다는 것도 그제서야 둔한 눈치 한 끝자락에 들어왔다. 아마도, 아마도 자신의 어머니가 맞을 것만 같은 그는 씁쓸하게 웃다가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곤 나쉬와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아야야, 하는 늘어지는 목소리에도 별 말 없이 잠시 뺨을 꼬집곤 그는 손을 떼어내었다.

 “나쉬와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들었지. 주변의 생이 신에 견주어 모두 같잖으리만큼 하찮은 티끌이라 여겼고.”

 “내 모친은 날 보러 온 적 없다더니 사실은 몰래 감시중이었나?”

 저렇게까지 잘 알려면 가까이서 보는 수밖에 없을텐데. 아마도 교단에서 얼굴 가리고 다녔음 직한 아마도 자신의 모친일 이를 바라보는 나쉬와의 시선이 조금 더 뾰루퉁해졌다. 부은 얼굴을 하고 있거나 말거나, 긴 머리의 그는 나직하게 아이에게 또 다시 말을 건넨다.

 “섀넌은 의지가 되지. 저는 튼튼하여 잘 서 있어 늘 다른 아이들을 지탱해주려 하네. 루카스는, 잘 자랐지. 누나들 걱정에 마음을 도닥이려 하려고 애를 썼고. 마리아는… 마리아는, 많이 아팠지. 더 행복했어도 되었을텐데, 아파서 다른 아이들을 아프게 하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건가?”

 능글 티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똑똑한 티끌에 대해 말하는 것도, 예쁜 티끌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생경할 뿐이라 나쉬와는 누운 자세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모친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스럽기 시작한 이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어른은 뒤로 물러서는 나쉬와에게 다가가진 않았고, 제자리에 선 채로 편안하게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내게 말하는 것이 어떤 소용이 있을 지 알지 못하나, 한 번은 말하고 싶었으니 지금 해둘까. 영영 이 곳에서 함께 살게 되진 않을 것 같으니 말일세.”

 “이 곳?”

 나쉬와는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경관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 내가 있었고, 자신을 쏙 빼닮은 어른도 있었고. 그리고… 저 멀리, 움직이는 것 같은 인영이 셋. 잘 보이지 않아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아도 멀어서 그저 티끌처럼 보이는 이들을 확인할 수가 없어 결국 시선은 다시 눈 앞의 어른에게 두었다.

 “많은 우연들이 날 여기에 세웠지. 여기에 설 리 없는 믿음이었음에도, 내 결국 택한 것이 내 잔혹한 신 아닌 친구들이었으니. 그러니.”

 그러고보니, 이 어른. ‘네’가 아니라, ‘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네만. 무언가 떠오르는 질문을 마저 말하지 못한 채, 나쉬와는 그대로 곤두박질치는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행운을 빌고 다정을 바라네, 나쉬와.”

 마지막으로 날 닮은 이가 하는 말은, 그 어느 기억에도 붙여두지 못한  채.

 “우음…..”

 “잘 자네. 이 참에 한번 간질어볼까?”

 “그랬다가 티끌 티끌 하는 소리 몇 번을 더 들으려고. 피곤하게.”

 “아, 나쉬와 누나 깼어? 사제님이 저녁 챙겨주라고 하셨는데.”

 눈을 붙였다 떼어내자 보이는 건 능글 티끌과 예쁜 티끌, 똑똑한 티끌. 똑똑한 티끌은 쟁반에 샌드위치와 김이 나는 스프를 든 채 보고 있었고, 예쁜 티끌은 역시 별 일 아니었잖아, 하며 걱정 조금 얹었다 만 얼굴로 창문만 바라보았다. 능글 티끌은 키득거리며 입 벌리라며 샌드위치를 집어들어 자신의 입 앞에 휘휘 흔들었다. 무슨 꿈을 꿨더라. 기억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새하얗게 아무것도 안 떠오르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으니 나쉬와는 늘 그렇듯 3초만에 털어내고 깍지 낀 손을 쫙 펼친다. 얼마나 잔 건지 손에서 쥐가 다 내렸다. 아야야, 앓는 소리를 내다 아직 잠에 겨운 목소리로,

 “루카스. 섀넌. 마리아.”

 지금껏 제대로 불러보지 않았던 이름이 문득 새어나온 이유만은 알 수가 없어서. 스스로 말하고도 어색하여 입을 다시 다물고, 한동안 다시는 꺼내지 않게 될 이름을.

 나쉬와는 있어선 안될 이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 내려다보다 다시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리아도, 루카스도, 섀넌도. 옛 모습에 대한 감상이나 후회는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 없었다. 우리는 하나이고 하나가 곧 우리이니 빠트린 이 없는 완전함으로 다시 돌아갈 차례이니, 붙잡을 이 없어 신만을 그리 갈구하던 연약했던 손과 발은 이제 자라나

 내 오래 간직한 신앙보다도 더 내 곁에서 다정했던 우리의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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