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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고 벨은 자기객관화를 잘했다.

 그렇게 어려운 존재가 아닌 탓이다. 심성이 배배 꼬인 데다가 썩 부드러운 성미도 되지 못했지만, 그거야 외부에서 볼 때의 이야기다. 안쪽에서 들여다본 자신은 너무도 직관적이고 명백하다.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존재. 나를 적대하지 않으면 오지랖 넓게 굴지 않고 적당히 제 갈 길을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은 묻어두지 않는다. 그게 남을 상처 입힐 말이라고 해도 개의치 않고 쏟아 이 속에서 축출해낸다. 갈등 잘 빚는 인간이란 그렇게 탄생하고, 그렇기에 휴고는 누구보다 견고한 정신을 지닐 수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지, 아마. 공백에 선 휴고는 지난 과거를 돌아본다.
 이 얼마나 걱정이 없던 시대인지. 신도들을 같잖게 여기고, 자유를 조금 제한받는 것에 가벼운 언짢음을 느끼며 다른 아이들의 발걸음에 쉽게 의탁하여 탈출을 꿈꿀 수 있던 유년.

 

 같잖은 건 내 쪽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전의 존재의 올곧음이란…….

 "참 팔자 좋다?"

 툭 뱉어 말하면, 색종이를 자르며 장난치던 손이 멈춘다. 푸른 시선이 닿았다. 바다를 닮은 양 시선이었다.

 "……아, 뭐야. 내게 형이 있던가… 아니면 삼촌?"
 "겠냐."
 "그냥 한 번 말해봤어. 너 뭐야?"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해오지만 시선의 기저에 깔린 경계를 읽는다. 다름 아닌 휴고, 저라면 아주 잘 아는 사실이다. 늘 껄렁한 듯이 말해오지만 매번 상대를 읽어오지 않았던가.
 물론 휴고는 자기 자신에게도 썩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시선을 맞대고, 말을 내뱉고. 그러면 모든 게 타자지. 더군다나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짐작가는 데가 있었기에 굳이 친절하게 말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어딘지… 흐리멍덩한 배경을 본다. 교단의 실내가, 수평선이, 넘실거리는 바닷물과 하늘이, 점이, 선, 면이…… 뒤엉키고 사그라지고 지나갔다. 이따금 지나다니는 신도들이 난데없이 교단 안에 나타난 낯선 사람을 제지하지 않는 것에서 느낀다.

 미래의 내가 뭔가 조잘조잘 말해오는 걸 곧이곧대로 믿어줄 놈도 아니잖아. 자기객관화 잘하는 휴고는 그러므로 맥락을 설명하지 않는 말을 일방적으로 떨어뜨린다.

 "죽지 그랬어."
 저주의 말처럼 들릴, 그러나 더없는 연민의 말이다.

 휴고는 열 살도 채 되어보이지 않는 낯에서 자신의 미래를 읽었다. 중간값 자신이었다. 넋이 나가선 쾌활하게 자살법에 대해 논하던 친구들. 그 자살 시도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내리지 않고 그 무의미한 저항을, 현실 부정을 지속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휴고 벨.
 씻지 못할 상처가 있었다. 이것만은 이비에게도, 리비에게도, 니무에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헛된 시도를 왜 해? 말할 것 같은 그 이성적인 머리로 조용히 칼을 챙겼던 지난 날에 대한 이야기다. 흉터가 남지 않았으므로 증거는 없다. 아무도 모르는 이 머릿속만이, 신만이 아실 그 음습한 비밀이 유일한 증거였다. 아마도 목을 찔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장보다는 목이 더 찌르기 쉽거든. 살고 싶어서 심장은 무수한 뼈로 둘러싸여 있잖아. 그래서 어딘가 장이라도 보고 오는 듯이 칼을 챙겨 나가선, 그대로,

 상처 입었던 것은 자신의 자아였다. 휴고 벨은 단 한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며 모든 저항을 접어두었다. 봐, 이조차도 사실 대단한 반항이 아니야.
 이를테면 도망이라는 거지. 그는 조금 웃었다. 이를 말하지 않는 것은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킬 것을 우려해서는 아니다.

 "신의 아이 따위로 바쳐지기 전에 죽어버리지 그랬어."

 같이 자란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휴고에게도 제법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정말이야, 이비. 별로 애착 없는 사람에게 그런, 품이 많이 드는 '충고'는 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난 귀찮은 게 질색인걸. 내 에너지를 쓸데없는 데에 낭비하지 않아. 이곳에 없을 지난 동료의 이름을 떠올리다가 으쓱인다.

 "아, 못해먹겠네. 구구절절 말하는 것은 역시 취향이 아닌 것 같다."
 "혼자서 뭐라고 하는 거야. 너만 알지 말고 말해주지?"
 "내가 왜? 싫어. 내가 지금 네 목을 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꽤 노력하고 있다고. 더 요구하지 마."
 "……이건 뭔 미친 소리야?"

 미친 소리지. 휴고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놓고 수상하며 위험한 말이다. 그리고…… 더없이 진심이고.
 같은 101호의 아이들에 나름의 애정이 있었어도, 그는 여전한 휴고 벨이었다. 내가 중요해. 내게 난 균열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면 이 모든 관계를 부정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냥 목숨만 이어 붙일 수 있다면 어떻게 살아도, 뭔 진창을 굴러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멀쩡하게, 인간답게 살고 싶어하는 게 그렇게 유별난 욕망은 아니잖아. 마지노선처럼 생각할 수는 있는 거잖아.

 '이 지경이 되어서도 못할 걸 알지만.' 그럴 수밖에 없잖아.

 이건 일종의 주마등이다.
 공백에서, 무위가 될 과거를 살피는 마지막 회고.

 모두 다 없던 게 되어버릴 녀석들이니까 서로 볼 수 있는 거지. 너나, 나나 따지고 보면 환상 찌꺼기나 다름없다는 거야. 이 세계에 실존하게 될 것은 한 사람뿐이다. 점차 이방인이 되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희박해지는 존재가, 이 세계에 발 붙이고 숨쉬도록 예속되었던 것이, 자격을 얻었던 것을 박탈당하는 감각이.

 "있잖아. 휴고 벨."
 "왜."
 "나는 제대로, ……."

 말을 잇다 말고 멈추었다. 청승맞은 질문을 내뱉으려던 입이 저다운 말로 끝맺어졌다.

 "……살았어."

 이게 유언 비슷한 거라면, 질문도, 답도 내가 내야 맞는 거지.

 "난, 돌아가도. 다시 그 나이대로 돌아가서 이 교단을 나가게 되더라도."
 "똑같이 살 거야."
 "남의 물건을 훔치고 살 거고, 거기에 별 가책도 안 느낄 거고."
 "남들이 너 왜 그렇게 사냐고 해도 똑같이 살 거라고."
 "나 후회 안 해."

 이 세계에 마지막 자취를 남겨야 한다면, 언어로 낙인을 찍어야 한다면.

 "그러니까 너도 잘 있어. 알았지?"

 "외로워 죽지 말고. 지긋지긋한 우리도 없어졌으니 잘 살아. 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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