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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모두를 위한 추도문

 우리ㅡ나는 두고 온 많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공백은 질문을 삼켜서, 나는 모든 말을 내 안에 담아 두었습니다. 배 안에서 글자가 긁혀서 아파올 때마다 입을 꾸욱 잡아 눌렀습니다. 얼마나 이러고 있었는지 시간을 알 수도 없이. 1년, 10년? 백년이 넘어버렸으면 어떻게 하지? 나는 어린아이처럼 몸을 둥글게 맙니다.

 

 남기고 온 존재를 생각합니다. 우리는ㅡ우리들은 수없이 죽었죠. 많은 이들이 우물속에 있다는 걸 약속이 가라 앉기 전에 우리는, 나는 알게 되었어요. 어쩌면 또다른 나도 그 아래에 있을지 모릅니다. 아, 가여운 나. 가여운 우리.

마음이 아파져 견딜 수 없을 때면 기도를 합니다. 누구를 위한 기도일까요. 이 기원이 닿을 신을 나는 버렸는데도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알고 있어요. 그들은ㅡ또 다른 '나'들은 다시 한 번 재탄생 할테죠. 그리고 뱃속에 삼켜지며 순환하겠죠. 그것이 정해진 이야기니까요.

 

 나는ㅡ우리는 운명을 거역했습니다. 또 다른 우리는 운명에 순응했습니다. 또 다른 우리는 운명에 삼켜졌습니다. 수많은 사실. 진실. 이미 발자취가 남겨져 돌아갈 수 없는 이야기들.

 

 과거의 이야기를 할까요. 

 가장 처음의 이야기. 우리는 그 날 새장에서 나와 숨이 차도록 달렸습니다. 그날의 찬 공기를 지금까지 잊지 못합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뺨이 서릿발에 붉게 물들었죠. 어째서 그 날, 그 때에 눈물을 흘렸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해방감 때문이었을까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마도 그건, 수치심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순번을 정해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것이 나는 그렇게나 부끄러웠던 겁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할까요. 우리가 기억속의 우물에 덮어놓았던 기억을 말할까요.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살아달라 목이 쉬도록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살아있잖아요. 이토록 쓸모없는 목숨이 아직까지도 살아 있잖아요.
 세상은 참 이상하죠. 죽고자 하는 존재가 살고 살고자 하는 존재가 죽습니다. 나는 그 새장 안에서 죽을 때까지 있었어야 하나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자유를 갈망한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 날 탈출하지 못했더라면, 그 숨겨진 계단으로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탈출할 마음을 먹지 않았더라면 많은 것이 바뀌었을까요. 분명, 그랬을 겁니다.
 버려지는 것은 익숙합니다. 속박당하는 것도 괴롭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체 새장 안 이어도 괜찮았습니다. 나는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사랑합니다. 아직도, 아직도요. 버려진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이상한가요? 상냥한 당신은 부모를 사랑하는 건 아이의 의무가 아니라고 말해주겠지요. 그렇지만 사랑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까.
 사랑이란 보통 외사랑. 그게 양방향이라는 건, 분명 기적같은 것. 나는 그걸 알고 있습니다. 사랑을 알고 만 존재는 외로움에 죽어 버린다 한들, 그럼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내가 증오해 마땅한 존재도 분명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 이 세상에 태어나 고독에 사무칠 때 누군가가 잡아준 온기를 나는 잊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도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나 혼자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사랑하기에 그 새장으로부터 달아나 버렸습니다.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사랑에 순번을 매겨 버렸습니다. 나의 새로운 가족을, 나의 친구를 사랑해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뜻을 따랐습니다. 누군가를 누군가보다 사랑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를 합시다. 우리를 사랑한, 세번의 번복을 싫어하는 검은 신에 대한 이야기. 솔직히 나는 그를 사랑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유는 공포 일까요. 나는 두려운 겁니다. 
 그는 시련을 이겨낸 인간을 사랑합니다.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사랑받는 것이 결국 두렵습니다. 나와 같은 존재는 괜찮습니다.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신은, 어째서 우리를 사랑하는 건가요?
 인간의 욕망이나 욕구를 신에 비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인간은 잡아먹을 돼지에게 애착을 갖지 않습니다. 그게 최상의 맛이 될 것이라 해도 그저 기다릴 뿐 눈조차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생선의 눈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 그 검은 눈의 침묵이 죽음을 말하기에 보는 이는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 인간이 다정하고, 상냥하고, 나약한 생명체이기 때문이겠죠. 분수에 넘치게도 스스로가 탐할 짐승에 동정심을 느끼는 겁니다. 어찌나, 어리석고 바보같고 사랑스러운가요?
 그렇지만 그 대상을 사랑한다면, 결국 저의 뱃속에 가라앉을 존재를 사랑한다면 미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서워요, 두려워요! 나는 그런 사랑 따위 필요 없어!
죽음에서조차 벗어나자 나의 몸은 떨림조차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건 이상합니다. 어째서 죽을 수 없는 거지?
 내가 가진 건 나의 목숨 뿐. 나의 운명 뿐. 그렇지만 그 목숨도, 운명도, 나의 모든 것을 당신은 갈취하실 뿐이군요. 뻔뻔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분노. 그래요, 이 감정은 분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남기고 온, 나의 친구에게. 나의 가족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며 행복해지길 바라며.
 요람 위에서 흔들리는, 아직 미래를 모르는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며.

 

 이 바다에서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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